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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군례(軍禮)의 정비와 그 정치적 의미
초록
이 글은 고려사 등의 기록을 분석하여 고려 전기의 군사 의례인 군례(軍禮)의 실제 모습을 복원할 가능성을 모색하는 연구이다.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고려의 국가 의례는 성종대에 중국 제도를 수용하며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고, 예종과 의종대에 상정고금례 편찬으로 집대성되었다. 이때 정비된 내용이 고려사 예지에 수록되어 있는데, 현재 견장출정의(遣將出征儀), 사환의(師還儀), 구일월식의(救日月食儀), 계동대나의(季冬大儺儀) 등 4개의 군례만이 전하고 있다. 고려의 군례는 당나라와 송나라의 군례와 비교했을 때, 국왕이 직접 출정하는 의례가 없고 장수를 파견하는 형태로 정리된 점, 일식・월식 의례와 대나의(大儺儀)가 포함된 점 등 독자적인 특징을 보인다. 하지만 4종의 의례 외에도 국가 의례로 기능했을 가능성이 있는 군사 관련 행사들을 분석하였다. 우선 대열(大閱)과 열병(閱兵)이 있다. 이는 군대를 사열하는 행사로, 거란 및 여진과의 전쟁을 겪은 현종, 예종 시기에 처음 나타났으며, 자주 거행되었다. 단순한 훈련을 넘어 의례적 성격이 강한 것으로 평가하였다. 다음으로 격구(擊毬)가 있다. 말을 타고 공을 치는 행사로, 군사 훈련의 효과가 있었으며 특히 의종대에 성행하였다. 하지만 의종대에 이미 오락적인 성격(擊毬戱)이 강해지면서 국가 의례로서의 속성은 상실한 것으로 분석된다. 관사(觀射) 및 열사(閱射)도 있다. 왕이 신하들의 활쏘기를 보는 행사로, 동지(東池)의 사정(射亭)처럼 정해진 장소에서 왕이 참관하고 신하들에게 상을 내리는 등 일정한 절차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 이에 의례화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이러한 군례의 정비와 시행은 거란, 여진과의 대외 전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 특히 12세기에 군례의 정비는 전쟁 패배나 정치적 혼란으로 실추된 국왕의 권위를 드러내고 강화하는 중요한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곧 예종은 여진 정벌 실패 후 신기군 사열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표명하였으며, 인종은 이자겸의 난 이후 거행한 제사를 통해 정치 쇄신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키워드
- 제목
- 고려 전기 군례(軍禮)의 정비와 그 정치적 의미
- 제목 (타언어)
- The Reconstruction and Political Function of Military Rites in Early Goryeo
- 저자
- 김보광
- 발행일
- 2025-12
- 유형
- Y
- 저널명
- 아세아연구
- 권
- 68
- 호
- 4
- 페이지
- 133 ~ 170